공정하다는 착각 완독 20250611

: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

정말 좋은 책!

『미움 받을 용기』를 처음 읽으면서 아들러 심리학적 방식에 대한 거부감이 정말 심했는데 이걸 읽으니까 이해가 됐습니다.

제 안의 뿌리깊은 능력주의 때문인가 봅니다.

기회의 균등, 기초 교육 기회를 기본적으로 제공해서 명문대 입학 기회를 계층에 보다 평등하게 분배한다는 것, 그리고 능력 있는 사람, 잘난 사람은 많이 벌어도 되고 그렇지 않는 나 스스로는 못났다고 생각하는 것 그 모두가 능력주의였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좀 어질어질한 건, 과거 시험이 있던 조선 시대 능력주의가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거쳐 문제없이 지금의 대한민국에 뿌리내린 것.

장원급제자와 무수한 낙방거자들. 판검사와 의사, 그리고 고시낭인들을 연결하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를 지탱해 나가는 건 평범한 사람들'인데 능력주의는 그 평범한 사람들이 되는 공포와 불안을 심습니다. 그 평범한 사람들을 멸시하고 그들과 달리 계층 상승에 성공한 사람들에게 명예와 인정을 분배해주고요.

낙방거자들과 고시낭인들이 시험에 불합격하자마자 '평범한 사람'이 되어 잘 살아가는 사회. 아주 좋은 사회 같습니다.

사회적 상승에 집중하는 능력주의적 사회는 민주주의에서 필요한 사회적 연대, 시민 의식 강화를 이뤄낼 수 없다고 합니다. 상승에 실패한 자들이 자기 자리에 만족할 수 있고 소속과 공동체 의식을 가질 수 있게 하려면 전반적으로 일의 존엄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하고요.

약자에게, 소수자에게 덜 악의적이고 더 관대한 공적 삶!

아들러 심리학에서 개인의 행복은 결국 공동체에 소속감을 느끼는 것에 달려 있다고 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능력주의적으로) 뛰어난 사람이 되는 것으로도, 낙인 찍혀 문제 행동 일삼는 사람이 되는 것으로도 느낄 수 없고, 결국엔 (능력주의 사회의 근간일) 인정 욕구를 버리고 공동체와 타자에 공헌감을 통해 행복을 느끼고 소속감을 느끼라고 하는 부분에서요.

미국 사회말고 우리 사회에서 (조선시대-일제강점기-)근현대 한국 사회 속 능력주의 정치 철학의 보편화에 대해서 쓴 글도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리고 일의 존엄성 회복 차원에서 생산자로서의 정체성이 소비자로서의 정체성보다 더 강화되어야 한다는 말에 또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미국 엘리트 사회 능력주의적 가풍에 희생된 젊은이들이 정신병리적으로 불건강하다는 부분에서는 정말 장원급제 시절부터 능력주의적 맹모삼천지교에 시달리는 우리나라 학생들이, (저 포함) 학생이었던 어른들이 정말 걱정됐습니다.

그 모든 자괴감, 열등감, 울분을 저도 느낍니다.

그런데 인터넷에 이런 글 써도 될 수 있도록 해 주신 민주화 열사 분들, 독립운동가 분들께 죄송스럽고 감사한 마음, 그리고 독재자와 폭력에 대한 강한 반감이 있었기 때문에 윤석열이나 이준석을 지지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저도 윤 어게인이나 이준석 지지자가 될 뻔했습니다.

미국 정계가 엘리트화되면서 능력주의와 시장 중심적 세계화로 인해 반감을 가진 포퓰리즘을 이용한 게 트럼프. 그리고 트럼프 본인조차도 자신의 학업 성적이나 학위에 대해 방어 기제가 있고 오히려 정적들의 성적과 학위를 공격하며 능력주의에 찌든 면모가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어쩌면 윤 파면 이후로, 김민석 씨가 어느 학교를 졸업했고 박찬대 씨가 한국회계사이자 uscpa라는 것에만 집중했다가는 또다시 윤석열이나 이준석을 마주칠 지도 모릅니다.

윤 내란 청산을 위해 광장에 나갔던, 광장을 지지했던 모든 분들, 그리고 개인 이득이 아니고 신념으로 윤석열과 국민의 힘을 지지하는 분들께 특히 이 책을 추천드립니다. 아마 저 빼고 다들 읽고 이미 체화하셨을 수도 있지만, 만약 안 읽으셨다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