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를 만나고 돌아온 다음날은 늘 우울하다. 그 다음날은 더 우울하다. 그냥 그쪽으로 걸어만 가도 나를 반겨주는 존재. 자고 있는 게 너무 착해보이고 귀여워서 찍으려고 해도 인기척 나면 귀신같이 깨서 날 보고 일어나서 기지개켜는 아이. 크고 따끈하고 부들부들하고 냄새나는 녀석. 그래도 나는 사람이라 개가 정 보고싶으면 시간 돈 들여서 찾아갈 수 있지만 개는 내가 보고싶어도 찾아올 수도, 폰도 돈도 없다. 나는 개를 많이 그리워해도 개는 내가 없을 땐 다른 가족들 친구들 보면서 나를 잊어버리고 있었으면 좋겠다. 개 없이 개 산책을 나가봤다. 개가 이제 나이 좀 들고 견주가 운동 많이 안 시키고 걸어만 다니니까 체력이 줄었다. 폭발적인 순간 속도나 순발력은 그대로, 아니면 더 좋아졌는데 지구력이 약해졌다. 그..

개가 보고싶다. 똥 치우고 밥 물 주고 간식 주면서 한 바퀴 돌아주고. 그리고 그 표정이, 사람을 좋아해주는 고마운 표정. 할 거 다 하고 적당히 몸에 열 올라 있을 때 만지면 뜨끈따뜻한 머리. 우리 개는 머리도 완전 커서 귀엽다. 머리에 어떻게 뽀뽀를 해도 남는 곳이다. 강형욱 님이 개들 사이에선 머리가 길고 몸이 근육질이고 균형 잘 잡혀있으면 미남미녀랬는데 우리 개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미녀다. 개랑 놀아주고 뒤돌아서 가면 내가 없어질 때까지 이쪽을 보고 있는 그 모습.

개가 보고 싶다. 개가 보고 싶어질 때는 개 사진을 본다. 다음주에 보러갈 때 시간 아깝지 않도록 좀 열심히 살아보자. 나는 그대로인데. 뭔가가 닳아 없어진 것 같다. 파도 물살에 쓸려 닳은 해안가 자갈처럼 오래 입어 빨고 말리는 동안 물로 햇볕으로 세월로 해지고 빛바랜 천처럼. 지친다는 느낌인가 아니면 늙는 느낌인가. 답은 늘 그렇듯이 둘 다, 이다. 하지만 우리 개는 그냥 건강하게 있는 것만으로 늘 더 눈부시고 늘 더 새롭다. 에너지가 뿜어져나온다. 아기 땐 작은데 왕발이고 짖지도 않고 뽈뽈 돌아다녀서 귀여웠고 지금은 큰데 발도 여전히 크고 짖지도 않는데 가끔 소동물보고 천둥처럼 짖고 산책하려면 사람이 먼저 지친다. 내가 싫고 없어지고 싶을 때는 있는 힘껏 같이 뛰어주고 전완근을 앙앙 씹는 맛이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