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추워서 마스크 안도 내 피부도 내 날숨이 물방울로 맺혀서 물 뚝뚝. 속눈썹에도 날숨으로 물방울. 강물에 갑자기 새가 많아졌다. 원래 터줏대감 같던 왜가리? 같은 엄청 큰 새도 있고 온통 까만데 물 위로 한 쌍이 낮게 날아다니는 조금 더 작은 새도 있고. 제일 귀여운 건 목부터 머리까지는 까맣고 몸은 흰데 살짝 회색으로 얼룩한 오리 비슷한 새. 털 부풀리고 추운 물 위에 떠 있다가 폭- 잠수해서 귀여운 주홍빛 발버둥을 보여준 다음, 수면에 파문만 일다가 아주 가볍고 조용하게 퐁- 하고 머리부터 수면 위로 돌아온다. 귀여워!

어제 헌혈하고 왔다. 그리고 힘들어서 일찍 잤다. 오렌지주스 너무 마시고 싶었는데 헌혈 후 버스 환승 안돼서 걸어서 30분 집으로 오고, 씻고 물만 마시고 옷 환불하러 다녀오고, 요리해서 밥먹고, 주방일 좀 했더니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걍 비타민을 들이붓고 물 많이 마시고 주스 마신 셈 쳤다. 비타민을 사놔서 다행이네. (트와이스 고마워) 오늘은 그래서 일찍 일어나서 의미없이 보내다가 비 오는 거 확인하고서라도 아침 산책 다녀왔다. 풀 나무 잎 돋는 거 보면서 걸으면 정신건강 정화된다. 오히려 벚꽃같은 건 보면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워서 이질적인데 잎이 돋아서 크는 거 보면 기분 좋다. 똑같이 밟아도 꽃보다는 잘 마른 나뭇잎 밟는 게 훨씬 기분 좋다. 꽃은 밟으면 촉촉해서 으스러지면서 흉해져서 슬프다..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나마 주어진 일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 자체가 좋고 감사한 거다 쉬고 싶은, 도망치고 싶은 마음은 잠시 미뤄두면 된다. 묵묵하게 자기 할 일 하는 사람은 너무 멋있다. 근데 나는 힘들거나 당황하면 입부터 나불거리게 돼서 그런 게 잘 안 나온다. 극한으로 너무 힘들면 조용해지기도 하는데 그럼 어디가 많이 아프거나 많이 화를 참고 있는 매우 극단적인 상태일 거다. 늘 사람들이 나에게 묻는다. 기분 좋은 일 있으신가 보네요? 없다. 그런 일은. 그냥 너무 힘들고 하기 싫은데 움직여야 되니까 여건이 되는 상황에서는 노동요로 노래를 부른다. 은근히 조선 농부들이 불렀던 모내기 노래가 큰 도움이 된다.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면서 정신은 차리고 있게 된다. 조용히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