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너무 재밌는 거 아뉴?
기절하는 줄.
그리고 웃으면서 읽은 다음엔 여러가지로 생각해보게 된다.
집단을 이루고 문명사회를 만들어서 적자가 된 인류.
또래 세대 문화가 10년, 5년 단위로 휙휙 바뀌는데 어쩌면 "곱게 늙으려고" 하는 모든 가시적, 형이하학적 시도는 결국 한계가 있는 것 같다.
백 투 더 클래식. 이라고 해도 형식적, 수단적 클래식이 아니라 세대를 초월하는 정신적 가치는 없는 듯 있다.
2020년도에 각그랜져 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각그랜져에게는 각그랜져의 생활상이 있고 전기차에게는 전기차의 생활상이 있다는 걸 알고 이외에 알지 못한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과 그 가치관을 인식하게 될 수도 있다고 가능성을 더 열어놓는 것 같다.
이 모두가 똑같이 살아가고 죽어가고 있다.
낯설고 불편해서 나를 바보로 만드는 것을 외면하고 요즘 애들로 타자화하는 것보다 백문이불여일견, 일단 잡숴보는 거다. 그리고 개개인을 아우르는 집단적 흐름과 그 이유를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들어볼 마음의 준비.
그런데 타자화는 어느 정도 내 멘탈과 정체성을 지키려고 무의식적으로 발동하기도 한다. 우리 강아지가 나를 처음보고 이 인간은 뭐지? 하면서 주 보호자와 구분짓는 것처럼.
일단 구분짓고 거기서부터 추후 상황 변화에 따라 관계를 맺으니까 최소한의 타자화는 더 큰 사회를 만들 때 각 이익집단이 대립 상생하는 데 필요할 거다. 아동권익 시민단체가 동물권을 우선시할 수는 없으니까. 집단들이 서로 타자화하는 게 각자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적절하게 필요하겠지.
지능 높아지면 타자화가 더 심해지는 걸까. 그럼 친화력이라는 것과 타자화는 반대로 작용하는 걸까. 친화력은 나와 다른 사람 사이에서 어울릴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거니까 타자임을 인식하고 나서 발동되는 적응 기술일까.
살아가다 보면 힘들어서 잘 생각 안되고 피로하니까 더 익숙한 방식으로만 효율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생물적 한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