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03

🇺🇦

맥주잔을 하나 샀다.

아이스 커피 관상용이다.

아이스 음료 담을 때 머그나 텀블러와는 다르게 유리잔만이 가지는 깨끗하고 투명 시원한 느낌이 있다.

이놈의 팬데믹이 끝나면 언제든지 아무 카페에서든 아이스 음료 유리잔에 담아서 몽중한 즐기려고 했는데, 오미크론 이후론 죽을 위험은 낮아졌지만 끝날 듯 끝나지 않는다.

친구고 지인이고 안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고 나니 새삼 혼자 카페가서 끄적거리고 폰 보다가 책도 읽고 하는 짓을 내가 생각보다 많이 좋아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너무 그립다는 것도.

다이소가 봄 시즌 맞이해서 핑크 틴팅 넣은 유리잔 제품 출시했던데 묵직하게 튼튼한 맛이 없고 채도 꽤 있는 핑크라서 깨끗 투명한 유리잔 느낌이 안 산다.

다른 잔들도 내열유리거나, 너무 얄팍하거나, 캐릭터 프린트를 넣었는데 유치찬란하거나 아니면 쉽게 다 벗겨질 징조가 보였다.

남은 선택지가 술잔밖에 없었다.

맥주 매우 좋아하고 브랜디는 얻어만 마셔도 감사했고 진 베이스 럼 베이스 칵테일 사랑했던 때가 있었다.

강제로 갑자기 그만하게 돼서 더 아쉬운 시절이었다.

그래도 그 시절이 있었기에 유리잔에 마시는 멋을 알게 되었다.

소맥이나 마시던 내가 향과 맛, 여러 모양 바틀과 브랜드가 있는 증류주 세계를 살짝 엿볼 수 있었다.

개인적 사정으로 지금은 완전히 술을 끊었다.

술을 끊기 전까지는 내가 알코올 중독인 걸 몰랐다.

염증이 안 생겨서 피부가 깨끗해지고 머리가 맑아지고 소화가 잘 된다.

체질상 별로 안 맞았던 것 같다.

술이냐 커피냐 딱 1개만 골라야 한다면 모카포트를 집으면서 더 단호하게 술 끊을 수 있었다.

모카포트 커피는 뜨겁게 뽑아서 물도 설탕도 안 넣고 그냥 조금씩 마시는 게 최고긴 하다.

하지만 유리잔에 얼음 듬뿍 넣고 샷과 물 넣는 한국식 아메리카노가 마시고 싶은 걸.


잔을 씻으면서 어쩔 수 없이 옛날 생각이 난다.

그래도 그 때 있는 힘껏 행복해서 다행이다.

얼음 넣어서 음료 만든 지 오래 돼서 냉동실에 얼음이 많지는 않았다.

싹 쓰고 깨끗하게 씻어서 한 통만 얼렸다.

냉음료 마시고 싶어진 걸 보니 봄인가보다.

Слава Україн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