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만나고 돌아온 다음날은 늘 우울하다. 그 다음날은 더 우울하다. 그냥 그쪽으로 걸어만 가도 나를 반겨주는 존재. 자고 있는 게 너무 착해보이고 귀여워서 찍으려고 해도 인기척 나면 귀신같이 깨서 날 보고 일어나서 기지개켜는 아이. 크고 따끈하고 부들부들하고 냄새나는 녀석. 그래도 나는 사람이라 개가 정 보고싶으면 시간 돈 들여서 찾아갈 수 있지만 개는 내가 보고싶어도 찾아올 수도, 폰도 돈도 없다. 나는 개를 많이 그리워해도 개는 내가 없을 땐 다른 가족들 친구들 보면서 나를 잊어버리고 있었으면 좋겠다. 개 없이 개 산책을 나가봤다. 개가 이제 나이 좀 들고 견주가 운동 많이 안 시키고 걸어만 다니니까 체력이 줄었다. 폭발적인 순간 속도나 순발력은 그대로, 아니면 더 좋아졌는데 지구력이 약해졌다. 그..
어제 헌혈하고 왔다. 그리고 힘들어서 일찍 잤다. 오렌지주스 너무 마시고 싶었는데 헌혈 후 버스 환승 안돼서 걸어서 30분 집으로 오고, 씻고 물만 마시고 옷 환불하러 다녀오고, 요리해서 밥먹고, 주방일 좀 했더니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걍 비타민을 들이붓고 물 많이 마시고 주스 마신 셈 쳤다. 비타민을 사놔서 다행이네. (트와이스 고마워) 오늘은 그래서 일찍 일어나서 의미없이 보내다가 비 오는 거 확인하고서라도 아침 산책 다녀왔다. 풀 나무 잎 돋는 거 보면서 걸으면 정신건강 정화된다. 오히려 벚꽃같은 건 보면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워서 이질적인데 잎이 돋아서 크는 거 보면 기분 좋다. 똑같이 밟아도 꽃보다는 잘 마른 나뭇잎 밟는 게 훨씬 기분 좋다. 꽃은 밟으면 촉촉해서 으스러지면서 흉해져서 슬프다..
리드줄하고 사람들과 더불어 산책하는 법을 같이 배우고 연습한 개가 이렇게 의젓하고 멋지다. 시골이어도 리드줄은 필수다. 접때 시골에서 키우던 큰 개가 우리 뛰어넘어서 고령 여성 물고 결국 할머니 돌아가신 일 있었으니까. 그런데 어젯밤 도심에서 쓰레기 버리러 다녀오다가 뭔가 퐁실퐁실한 허연 것이 와다다 뛰어가는 걸 봤다. 아, 주인이 리드줄 놓쳤구나! 싶어서 혹시 멀리까지 나와서 집 잃고 주인 잃은 방황견이면 도와주려고 갔는데... ? 6차선 도로에 인도로는 배달 오토바이, 전동 킥보드, 자전거 달리는 도심에서 개를 리드줄 없이 데리고 나온 사람이 있다아? ...ㅎㅎㅎㅎㅎㅎㅎ 리드줄 살 돈이 부족하신 거라고 생각하면 그 흰 푸들 예방접종은 하는지, 밥은 그냥 사람 음식 먹이는지 머리 복잡해졌다. 나 보고 ..
🐸 경칩이다. 남쪽에는 봄이 더 이르게 온 느낌이다. 햇살 따뜻하고 하늘 파랗고 맑고 미세먼지 없는 날. 창문, 베란다, 방충망에 쌓인 먼지 닦아내고 환기했다. 날이 너무 좋으니까 그간 여행도 못 가서 억눌려 있었던 게 터졌다. 달씨랑 강변으로 나들이 다녀왔다. 올 첫 매화를 봤다. 첫 매화라기에는 너무 만개해 있어서 민망했다. 엷은 연두색 꽃받침에 하얀 매화꽃 좋다. 마스크 써야해서 향 못 맡은 게 아쉽다. 매화향 세상 좋아하는데. MARINA가 부르는 Orange Trees를 팍팍 들으면서 다녀왔다. 찍어온 사진 예쁘다. 그래도 강바람 춥다. 큰 물이 있는 곳은 늘 바람이 추운 것 같다. 예전에 신체검사 받으러 봄에 부산 갔다가 경남은 더운 곳이라고 착각해서 옷 얇게 입었다가 바닷바람에 얼어죽는 줄 ..
(택배가 온 걸 제일 먼저 발견한 개) 개가 보고 싶다. 실컷 돌아주고 열 오른 따끈하고 부들부들 귀 만져주고 싶다. 원래는 얘가 한창 이갈이 할 때 주인이 집에 없고 나 혼자 밥주고 산책시키고 놀아줘서 내 신발끈과 바짓단, 손을 집중 공격하면서 이갈이를 해댔다. 문젠 이게 나 한정으로 나만 만나면 내 앞에 드러누워서 내 손가락을 물어뜯는 버릇으로 남았단 거다. 다른 사람 손은 아무도 안 무는데 내가 만져주기만 하면 갱얼쥐 시절로 돌아가서 어리광 피우다가 드러누워서 꼭 손가락을 문다. 금으로 된 실반지가 앙앙 무는 맛이 좋은지 많이 변형됐다. 개주인이 나보고 실반지 변형된 게 흉하다고 하시길래 '댁네 개가 그랬소이다' 해드렸더니 엄청 당황하셨다. 반지는 입으로 하나 뽑아간 적이 있었는데 식탐러가 먹은 줄..
얼마 전 횡단보도 건너다가 어이없는 일을 목격했다. 한 손에는 자동목줄, 한 손에는 휴대전화를 들고 건너는 반대방향을 보면서 통화 중이던 분. 나와 다른 사람들이 건너오자 그제서야 황급히 길을 건넌다. 여전히 한 손엔 폰, 한 손엔 소형견을 데리고 뛰기 시작한다. 그런데 총 몸길이가 40cm도 안되어 보였던 강아지는 주인이 통화하는 동안 길에서 자유롭게 냄새를 맡으며 횡단보도와 상관없는 곳으로 향하고 있던 거다. 주인은 뛰기 시작하면서 이 개가 어디에 있는 지 전혀 뒤돌아보지 않았다. 소리내 부르지도 않았고 목줄도 자동목줄이라 아주 길게 늘어져 있어서 주인이 급하게 뛰기 시작할 때 당장은 개에게 아무런 신호가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 작은 게... 주인이 뛰기 시작한 힘에 난데없이 휙- 낚아채지고, 그러..